
1. 의미 통번역론의 개념
의미 통번역론은 ‘의미 이론’ 또는 ‘해석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명칭은 통역을 바라보는 이론의 핵심 관점을 보여주는데, 의미 통번역론은 통역한 언어의 단어나 문장을 다른 언어를 기계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담화에 담긴 메시지와 의미를 파악하여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또한 해석 이론이라는 명칭은 통역사가 화자의 발화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목표 언어로 재표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공연을 앞둔 사람에게 "Break a leg!" 다리를 부러뜨려라! 라는 말을 했을 때 진짜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공연을 무사히 잘하고 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담화에 담긴 메시지엔 의미가 담겨있고, 그것을 파악하여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해석’은 통역사가 화자의 말을 자의적으로 바꾸거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재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통역사는 발화의 언어적 표현뿐 아니라 발화가 이루어지는 상황, 앞뒤 문맥, 화자의 의도, 청중의 배경지식 등을 종합하여 메시지를 이해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주관적인 감상이 아니라, 언어적 정보와 상황적 맥락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전문적인 인지 과정이다.
통역사의 배경지식과 경험은 이러한 의미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치·법률·의학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는 해당 분야의 개념과 용어를 알고 있어야 발화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같은 문장이라도 상황과 화자의 의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통역사는 표현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담화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해당 분야의 개념과 용어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화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
2. 통역의 세 단계
의미 통번역론은 셀레스고 비치의 회의 통역 연구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셀레스고 비치는 통역을 출발어의 표현을 목표어의 표현으로 곧바로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발화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 뒤 이를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통역 과정은 일반적으로 다음 세 단계로 정리된다.
1). 이해 단계: 화자의 발화를 듣고 언어적 내용과 발화 의도를 파악하는 단계이다.
2). 탈 언어화 단계: 문장의 표면적 형식에서 벗어나 발화가 전달하는 핵심 의미와 메시지를 이해하는 단계이다.
3). 재표현 단계: 파악한 의미를 목표 언어의 문법과 표현 관습에 맞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단계이다.
이 가운데 탈 언어화는 의미 통번역론의 핵심 개념이다. 통역사는 발화의 단어와 문장 구조를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표현을 통해 파악한 내용과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한다. 즉 의미가 형성된 뒤에는 단어 자체보다 그 단어들이 전달한 메시지가 남게 된다. 학술적으로도 탈언어화는 텍스트의 이해와 재표현 사이에 놓인 중간 단계로 설명되며, 언어적 형식에서 벗어나 비언어적인 의미를 도출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탈언어화가 중요한 이유는 언어마다 표현 방식과 문장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출발어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목표어로 옮기면 문법적으로 부자연스럽거나 의미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통역사는 먼저 원문의 메시지를 이해한 후, 목표 언어의 청중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용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따라서 통역의 충실성은 단어와 문장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메시지와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3. 언어학적 등가론 과의 차이
의미 통번역론은 당시 통번역 연구를 지배하던 언어학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구조주의 언어학과 비교언어학에서는 언어를 하나의 독립된 체계로 보고,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서 대응하는 단위와 등가 표현을 찾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번역과 통역을 한 언어 체계를 다른 언어 체계로 대체하는 행위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통역에서는 단어와 단어가 언제나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같은 단어도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며, 하나의 의미가 언어마다 서로 다른 문법과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발화의 의미는 단어 자체뿐 아니라 화자의 의도와 발화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언어 간 등가만으로는 통역사가 수행하는 이해와 판단의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셀레스고 비치는 통역의 연구 대상이 언어 체계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통역사는 출발어의 표현을 기계적으로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화자의 발화를 이해하고 그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전문가이다. 그렇다고 의미 통번역론이 언어학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통역사는 언어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고 다시 언어로 표현해야 하므로 언어 지식은 필수적이다. 다만 언어 형식과 등가만으로 통역의 전 과정을 설명하려는 태도에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4. 발전과 의의
의미 통번역론은 통역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통역 기술과 실제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후 연구가 축적되면서 순차 통역과 동시통역, 통역 교육, 통역사의 자질과 태도, 번역 문제까지 논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파리 학파와 후속 연구자들은 이 이론을 통역 및 번역 교육에 적용하면서 통역 과정의 인지적 특성을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이 이론의 가장 큰 의의는 통역을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통역사는 원문의 단어를 그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화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파악하여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통역 교육에서도 외국어 능력만이 아니라 배경지식, 담화 분석 능력, 핵심 내용 파악 능력, 기억력과 재표현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한다.
결국 의미 통번역론에서 통역의 대상은 언어 형식 자체가 아니라 담화에 담긴 의미이다. 통역은 발화를 이해하고, 언어 형식에서 벗어나 의미를 파악하며, 그 의미를 목표 언어로 자연스럽게 재표현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은 통역의 실제적 특성과 통역사의 전문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지금까지 의미통번역론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다음시간에는 의미통번역론에서의 통역과정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참고문헌
정혜연, 『통역학개론』,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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