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통역 과정의 개념
저번 시간에 이어 오늘은 의미 통번역론의 통역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의미 통번역론에서의 통역 과정은 파도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Seton 1994:44) 통역사의 이해와 발화는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통역사의 지식에 따라 불규칙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통역사의 이해와 발화로 구성되는 통역 과정 역시 바람의 강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파도처럼 불규칙한 단위와 간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텍스트가 통역사의 지식과 통합되어 이해되는 순간, 통역사 두뇌에 음운적 기억은 사라지고, 인지적 기억만이 비언어적 형태로 남는다. 이렇게 형성된 내의는 해당 개념의 난이도(연상의 어려움 등)에 따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도착어로 언어화되는데, 이것이 의미 통번역론에서 보는 통역 과정이다.
2. 통역 과정의 세 가지 단계
셀레스고 비치(Seleskovitch)는 이러한 통역 과정을 듣기와 이해하기, 발화하기의 세 단계로 분류하면서 이들 단계는 상당 부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첫 번째, 듣기 단계(제1 언어 듣기)는 연사의 발화를 청각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단계이다. 통역사의 청취는 구어(口語)로 이루어지는 통역의 성격상, 구어의 특징에 영향받게 된다. 구어에서는 문장 구성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간단한 문장이 선호되며, 화자가 같은 시공간에 있는 청자를 배려하기 때문에 문어에 비해 그 이해도가 높다. 또, 구어는 한 번 순간적으로 발화되어 반복되지 않는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어의 높은 이해도는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파악해야 하는 통역사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 발화의 순간 성이나 비 반복성조차도 출발 언어의 간섭에서 벗어나, 메시지를 파악해야 하는 통역사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통역사는 소멸성이 높은 구어를 시간 내에 이해하기 위해 청각적 정보뿐 아니라, 통역 상황에서 주어진 시각적 정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 자체가 지니는 모호성은 통역사의 사전 지식과 문맥 판단, 상황 판단을 통해 점차 소멸하고, 이로써 통역사가 발화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다.
두 번째, 이해하기(내용 의미 형성)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통역사는 발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인지적 노력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인지적 노력이란, 언어 표현 자체를 의식적으로 잊고, 메시지만을 파악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보통 화자의 의도를 담고 있으며, 내부 논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통역사가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자의 의도를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하면서, 그 안에 담긴 논리를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언어 자체가 갖는 다의성과 모호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 이해를 위해 필수 불가결인 것은 무엇보다 통역사의 언어 지식과 주제 지식이다. 통역사는 먼저 언어 지식을 통해 다양한 언어적 의미를 연상하게 되고, 이렇게 연상된 의미들은 주제 지식을 통해 걸러져 문맥에 적합한 의미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이해 과정의 결과는 이미지의 형태로 표현되고 기억된다.
마지막 세 번째, 발화하기(제2 언어 발화) 단계로 이 단계에서 통역사는 앞 단계에서 형성한 내의를 도착어로 재언어화(再言語化)한다. 여기에서도 발화의 대상은 연사의 표현이 아닌 메시지인데, 통역사는 비언어적 형태의 메시지를 언어화의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언어 간섭 현상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단, 발화에 있어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통역사의 주관성과 표현의 자유이다. 메시지는 통역사 이해의 결과물인 만큼, 통역사의 주관적 요소가 담길 수 있고, 이러한 메시지를 기반으로 하는 통역사의 발화 역시도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통역사는 표현의 자유는 메시지의 내용을 왜곡 없이 전달하려는 한도 내에서 주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논의된 세 단계에서 통역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단계를 나타낸 것으로, 통역에는 이 외에도 이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다양한 행위가 있다. 먼저, 상황에 대한 의식이나 통역 결과물 관리의 경우, 지속적이기는 하나 상당 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또 언어 대치식 통역이나 전문용어 통역 등은 해당 어휘의 난이도나 통역사의 지식에 따라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이러한 점에서 셀레스고비치는 이를 의식적 노력을 동반하는 위의 통역 과정과는 별도로 언급한다.
Lederer는 이러한 셀리스코비치의 이론을 수용하고 확대하였다. 그는 셀레스코비치의 통역 과정을 보다 세분화하여, 듣기 단계를 음운 청취와 단어연상 단계로 나누고, 이해하기 단계에서 문장분석단계(parsing)와 의미 조합체 형성 단계(청취 내용과 문맥, 기존지식이 합쳐진 상태)로 각각 분류하였다. 이 중 처음 듣기단계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마지막 내의의 형성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통역과정을 설명하면서 셀레스코비치의 '내용의미'를 여러 가지 의미가 조합된 형태 즉 '의미조합체'로 보았다. 이는 모호한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의미 조합체라는 개념에는 언어의 통사론적, 의미론적, 화용론적 분석 결과가 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즉, 통역사는 출발어를 청취할 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문장, 언어의 사용 문맥 등을 분석하고 이를 조합한 결과가 의미 조합체, 즉 내용 의미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 의미가 통역의 단위로 사용될 때, Lederer는 이러한 내의가 통역 과정의 의미 단위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참고문헌
정혜연, 『통역학개론』,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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